[에세이]고빠라 하기엔 어렵지만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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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빠란,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광팬이기 때문에 자칭타칭 불리우는 별명인데

즉, 고레에다 히로카즈 빠순/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번에 '영화'에 관한 북큐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도 고레에다 감독님의 책이 3권 있습니다.

그 중에 이번 북큐레이션에 포함된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제게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고레에다 감독님의 사인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인을 받게 된 것은, 2019년에 고레에다 감독님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개봉에 맞춰

영화 전문 채널 Nihon Eiga를 통해 방송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 봉준호, 가족을 그리다'라는 주제의 대담을

가배도 삼청점에서 촬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장소 섭외 문의가 들어왔을 때 뛸듯이 기뻤습니다.

무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라니!! 

다른 장소 하나를 놓고 저희와 고민 중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애가 탔던지요.


봉준호 감독님은 정말 풍채가 크고 목소리도 깊게 울리는 분이었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려퍼지더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는 말씀도 없이 굉장히 조용히 앉아 계셔서 감히 가까이 접근을 못했습니다. 

다행히 대담이 끝나고 떠나시기 직전에 간신히 사인을 받을 수 있었던 건데요,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 갑자기 훌렁 나가서 골목을 한바퀴 걷고 돌아오기도 하셨습니다.


대담 중에 제공된 저희 밀크티를 드시고 엄지척을 해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가배도에서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습니다.


일전에 영화와 소설 [환상의 빛]도 소개해드렸는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걸어도 걸어도] 입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의 핵심 주제인 가족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상실 후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가만히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이 좋은 것은, 삶의 복잡함에 대해 쉽게 덮어버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그대로 전달하면서 관객들에게 함께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쉽게 구분하지 않고 사연을 구구절절 읊지도 않고 그냥 묘사하면서

오히려 삶의 오묘함을 전달하는 점이 좋습니다.

마냥 즐거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짧은 대사 안에 희생자 가족의 마음 속에 가라앉아 있는 차가움이 확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척'이 없다는 것, 그리고 손쉬운 감정 표현이 없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고레에다 감독님이 그냥 '착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깊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다'고 하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이중법적인 구조로 전달이 될까요. 진실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제가 주제 넘는 걸까요.

책에는 영화를 만든 과정이나 창작자의 태도, 그리고 사회에 대한 비판까지 고레에다 감독님의 다양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어느하나 관성적인 것을 그대고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맞장구가 아니라 차라리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가배도 삼청점에서 촬영한 대담은 아래 유투브 채널에서 자막이 달린 형태로 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봉준호 감독님 사인도 물론 받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