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리뷰]종이달(2015)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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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드라마화 된 바 있는 

일본 영화 [종이달]은

가쿠다 미쓰요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얼마 전 문득 생각이 나서 이 영화를 집에서 보았는데

왜인지 마음에 남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카는 언제부터 망가진 걸까.

사람은 어떻게 타락하게 되는 걸까.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서를 다시 돌이켜보면,


리카는 전업주부였다가 은행에 취업을 합니다.


일본 은행은 참 아날로그적인지

영업직 직원이 고객의 집을 방문해서

서류나 돈을 주고 받는데, 

리카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한 고객의 집을 방문해서 상품을 설명하는데

상품 판매에는 성공했지만

성희롱을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집에 있던 손자가 방에서 나와 

상황을 모면하게 됩니다.

은행 상사는 리카의 영업 성공을 칭찬하면서도

리카의 외모가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리카는 계약 사원이 된 기념으로 백화점에 가서

30만원대 시계를 사서 자신도 차고 

남편에게도 선물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고맙다고 하면서도 

더 좋은 것 사지 그랬냐고 합니다.

리카는 싸구려라 미안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웃으면서 말하지만 약간은 모멸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동료의 송별회로 회식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객의 집에서 자신을 도와준 손자를 우연히 만납니다.

손자는 리카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을 따라옵니다.

리카 마음에 무언가 동요가 이는 듯 합니다.


리카는 고객의 집에서 예금에 넣을 돈을 받아오는 길에

다시 백화점을 들릅니다.

이번에는 화장품을 구매하려는데 현금이 부족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리카는 고객에게서 받은 현금 중 

1만엔을 꺼내어 구매를 마칩니다.

그러고서 바로 자신의 계좌에서 

현금을 찾아 메꾸어 놓습니다.

이것이 리카의 첫 부정한 행위가 됩니다.


그 후 어느날 집에 가는데

다시 지하철에서 그 손자를 만납니다.

마침 남편은 출장을 갔습니다.

리카는 그 손자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새벽에야 집에 왔는데

마침 일찍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집에 옵니다.

출장 선물이라며 리카에게 카르티에 시계를 건넵니다.

왜 시계를 주느냐고 묻는 리카에게 남편은

이제 이 정도 차도 되지 않냐고 말합니다.


이후 리카의 외도는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손자의 할아버지 고객을 

다시 찾아가게 되는데

손자에게 빚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리카는 자신이 그것을 해결해주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것이 리카가 큰 부정을 저지르는 계기가 됩니다.


이제부터 리카는 서류를 조작하고

고객의 현금을 빼돌려서

굉장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마치 자신이 돈이 많아서

어린 남자친구를 지원해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남편이 상하이에 발령이 나서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화려하게 빛나는 거짓된 삶을 살아갑니다.


결론은 누구나 예상하는 바,

남자친구는 배신하고

경력이 오래되고 철두철미한 선배에게 

그동안의 부정을 들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제 다 들통이 날 위험에 처한 리카가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에서 주저하고 있을 때

우연히 지나가던 선배가 묻습니다.

'건널 거야, 말 거야?'


모든 것이 들통나 문책을 하는 자리에서

리카는 이야기합니다.

첫 외도를 저지르고 새벽에 돌아오는데

아직 하늘에 있던 달이 손가락으로 지워지더라.

가짜니까 당연하다.

가짜니까 망가져도 상관없다.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자유로움을 느꼈고 행복했다.


그러자 선배가 이야기합니다.

'분명 돈은 가짜일 수도 있죠. 종이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는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당신이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예요.'


그러자 리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자로 창문을 깨고 그대로 달아납니다.


영화는 리카가 횡령을 저지르면서

사치스러운 삶을 살 때

리카의 어린시절을 번갈아가며 보여줍니다.

미션스쿨에 다녔던 리카는

학급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다른 나라의 어려운 아이를 도와주는 

기부를 하게 되는데

다른 아이들이 시들해져서 그만두는데도

리카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큰 돈을 냅니다.

그런 기부는 잘못된 것이라며 수녀님이 혼을 내도

리카는 자신은 그 아이를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무엇이 잘못 되었냐고 묻습니다.


영화는 전개가 매우 빠릅니다.

리카의 첫 부정과 외도가

느닷없이 이어진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문이 생깁니다.

리카는 언제부터 망가진걸까.

리카가 길을 건넌 것은 언제부터?

남편에게 무시당한 것이 마음에 쌓였을까.

외모 칭찬을 듣고 어린 남자에게 관심을 받으니

설렛던 걸까.


읽어보진 못했지만 찾아보니

소설에서는 어린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자

돈을 훔치게 된 것으로 되어있다고 하는데,

이동진 평론가가 지적한 대로

영화에서는 리카가 외도를 저지르기 전

화장품을 사면서 횡령한 것이 첫 부정이었기 때문에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드러난 리카의 특성에

더 주목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과적인 선을 위해서 악을 서슴치 않는 뒤틀린 도덕관.

누군가를 돕는다는 의미에서 '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돕는데서 느끼는

통제감과 우월감이 아니었을까.

화장품 사건은 그런 특성을 가진 리카가

횡령을 시작하는 하나의 물꼬,

횡단보도에 뻗은 한 걸음이었던 것이죠.


뚜렷한 악한이 나오는 이야기보다

이런 이야기에서 저는 더 섬뜩함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악마는

사실은 알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나 

천사같이 말간 얼굴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한 부분을 건드립니다.


아 그렇군. 허영심이었을까.

알파치노의 악마 연기로 유명한 

[Devil's Advocate]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악마의 마지막 대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Vanity, definitely my favorite sin."

(허영심, 그건 분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죄이지)


아아, 우리는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싶은건지.

남에게 도움이 되고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건지.

애처롭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리카는 동남아로 보이는 어떤 나라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아버지의 돈을 훔쳐 보내준

그 아이를 재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리카가 도망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리카의 상상 같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리카는 여전히 종이달이 뜬

가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를 망가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간만에 여러모로 

생각하고 싶게 만들었던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