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리뷰]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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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여성 8인과 

세계의 여성시인 12명의 시를 엮은 시집입니다.

예부터 뛰어난 여성의 삶은 참으로 어려운 것인지,

시집의 제목에서 

그들의 쉽지 않았을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집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이 여성들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지

대변하는 듯합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스무 명 시인의 인생이

간략하게 적혀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글로써

표현했고 저항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자 했던 절실한 마음이

시에 담겨있습니다.



시인이자 서양화가로 

당당한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은

관습적인 모성을 거부하며 

<母된 감상기>를 지었고

인형이 되기를 거부하며

'노라를 놓아라'라고 외칩니다.


이 책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김명순은

1세대 신여성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기생의 딸이라는 배경과

훗날 대한민국 초대 

육군 참모총장이 되는 이응준에게 당한

데이트 강간으로 평생을 옥죄어

갖은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든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 김명순의 시 <유언> 중에서


저는 이렇게 강렬한 분노와 

슬픔과 원통이 담긴 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피해자를 정죄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요.

가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디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렇게 시를 통해 절절히 외친 그녀가

마흔 네 살의 나이로 도쿄로 떠난 후

생활고와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홀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더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소설가 임노월과 

삼각관계였던 김명순을 욕하던

문학평론가 김기진의 저격성 글에 대해

김명순의 대응은

이 시집 모든 여성의 삶을 대변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 근현대 자수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을 

보고 왔습니다.


'조선시대의 자수는

생활주변에서 가장 영롱한 일면이나

색채와 구성이

수천 년간 여인들의

애틋한 안목과 애환과

정성으로 세련되어

어느나라 어느 시대의 자수와 비교하여도

우리의 특색이 어엿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때로는 화사한 꿈길로 인도하여  즐겁게 하며,

때로는 대담한 구성과 색의 조화로

마음 속을 탁트이게 하기도 한다.'


최순우 선생님의 글 가운데

'애틋한 안목'이라는 말이 마음이 걸립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펼칠 수 없었던

여성은 아무리 그 안목이 뛰어나도

애틋한 것이었습니다.


자수 작품들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손 끝으로 전해진 그들의 삶에

아연해졌습니다.


그러나 자수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자 했던

여인들의 애틋한 발버둥에

우리는 오늘의 존재로 살아갈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