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술

Hanna
2021-11-11
조회수 738

인생의 무엇이라 그러면 너무 거창하지만

그 순간 딱 만난 바로 그것이 잊을 수 없는 깨달음을 주었다면

인생의 무엇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는 2016년, 한창 회사를 다니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무료했던 전 팀에서 새로운 팀으로 옮겼는데

악명 높은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옮길 수만 있으면 어디라도 좋아'

라는 무식한 생각으로 수락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저의 성정에 맞지 않는 업무에

매일 얼굴에는 열꽃을 붉게 피웠습니다.


한참 끙끙거리다가 어디라도 찾아가자 싶어

모교에 있는 상담소에 가서 상담도 받아보며

한참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대학로에 '독일주택'과 '인생의단맛'이라는 멋진 술집이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이 두 곳을 만드신 사장님께서 새로 바를 오픈하셨다는 소식을 들어서

하루는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다가

아 거기를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새로 오픈한 가게 이름은 '수도원' (@soodowon)

대학로 뒷골목 건물 지하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돌로 된, 정말이지 유럽의 수도원같은 공간의 바입니다.

다시 한번 사장님의 센스에 감탄!


조심스레 앉은 바에서 추천을 받은 것은 바로

Monkey 47로 만든 진토닉이었습니다.

갑자기 웬 원숭이냐 하시겠지만

Monkey 47은 47가지 허브가 들어갔다는 독일 블랙포레스트 지방의 진입니다.


진은 기본적으로 주니퍼베리가 들어간 무색의 증류주이기 때문에 주니퍼베리의 향이 주로 나지만

몽키 47은 47가지 허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황홀할 정도로 향기로운 것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최근에 마신 몽키 진토닉입니다.ㅎㅎ)


첫 한모금 마시고 든 생각은

'아 이래서 내가 일을 하는구나'



워낙 프리미엄 진이기에 가격은 일반 진토닉보다 높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상담 받으면서도 해소되지 않던 것이 녹아 내려가고

일의 의미를 찾는 무거운 질문에 가장 가벼운 답을 찾았습니다.


일로 돈을 벌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나 맡으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 너무 대단하고 다 좋지만

이렇게 멋진 것을 마실 수 있다는 기쁨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술,

다음에 만나시면 꼭 한번 마셔보세요.

(병도 예뻐서 다 마시면 집에 장식해 두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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