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나라야마 부시코(Ballad Of Narayama, 1983)

Hanna
2022-01-03
조회수 1807

<처절한 삶과 위엄있는 죽음에 관하여>


설이 주말이어서 휴일 느낌이 나지 않았지만 

급한 업무들이 지나간 덕분에 느긋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내향적인 인간인 까닭에 혼자 영화보는 것이 최고의 휴식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 꼭 뭘 봐야할지 잘 모르게 됩니다.

저는 핸드폰으로는 왓차를 사용하는데, 영화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추천작들을 둘러보던 중 뭔가 날것스러운 화면에 끌려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나라야마 부시코'였습니다.


요즘엔 일본 영화가 힘을 많이 잃었지만

한때는 세계적으로 일본 영화가 더 두드러졌다고 하던데 그 시대 영화인가 봅니다.

처음 들어본 제목이었지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데다가 

제가 매우 신뢰하는 이동진 평론가님이 별 다섯개를 주셨기에 오호라 하고 틀어보았던 것입니다.


첫 화면은 수묵화와 같은 검은 나무에 대비되는 설산으로 시작합니다. 

산 속 깊이 파묻힌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겨울이면 전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기에 먹을 것을 구하고 비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먹는 입을 줄여야 해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논에 버리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소금 한 줌에 팔아버리기도 합니다.

영화는 먹을 것을 구하고 남녀가 관계를 맺는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물의 모습과 교차하여 보여줍니다.

실상 말을 하고 옷을 입고 농경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동물과 다를 바 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자손이 이어지게 하기 위해 그 마을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집안의 장자만 아내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70세가 되면 나라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오린은 69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정정하고 이도 튼튼합니다.

하지만 책임감 강한 오린은 매일 다른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면서도 어서 산에 들어가야 한다며 준비를 합니다.

오린의 남편은 오래 전 그의 부모를 차마 산에 버리지 못해 마을에서 도망가고 오린은 항상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오린에게 있어 산에 들어간다는 것은 책임을 다하고 삶을 훌륭하게 마무리하는 최종 단계였던 것입니다.


영화는 오린이 결국 산으로 들어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마을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를 둘러싸고 정말 잔혹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이 정말 날것 그대로 묘사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식이나 감정의 과잉 없이 산다는 것의 처절함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비되어 흰 눈이 날리는 산 속에 오린의 표정에는 어떤 위엄이 깃들어 있습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아, 이것이 일본의 문화구나 싶은 태도가 있는데

공동체에 대한 희생이 개인에게 부당하더라도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의연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식량을 뺏고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를 산 위에까지 모시지 않고 절벽으로 밀어버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결국 선택과 태도의 문제인가 봅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

간만에 본 아주 강렬한 영화였기에

추천을 드립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