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우와 권진규의 집, 그리고 내셔널 트러스트

Hanna
2023-06-11
조회수 313


혜곡이 떠난 자리

호박색 전구가 툭 하니 걸려 

책 읽는 자리를 비추는 모습이

목가구와 병풍이 자아내는 전통적인 분위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혜곡 최순우의 집,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 기금이 2002년 확보하여 

2004년 일반에 개방을 시작했습니다.



시대의 안목이었던 최순우는

한국전쟁 당시 간송의 보물을 지켜냈고

우리 문화재의 첫 해외 순회 전시를 치뤄냈으며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 8년을 보낸 집이 이곳,

성북동의 최순우 옛집입니다. 



지난 3월 이곳에서 한옥에 대한 강의가 열려

처음으로 다녀왔습니다.

6개월의 보수공사 후 문을 연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기름먹인 밀화빛 장판,

정갈한 목가구와 민예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초목으로 가꾸었다는 마당에도 그대로

곳곳에 놓인 동자석들과 함께

시간이 쌓여있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 후원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22년 5월의 일입니다.

당시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권진규의 아뜰리에에서 

음악 연주회를 한다는 정보를 들은 것입니다.



예전부터 권진규의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에

2021년 말에도 PKM 갤러리에서 열린 

권진규 전시에 다녀왔던 터였습니다.



찾아보니 권진규의 아뜰리에를 보존하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여는 연주회로

회원만 참석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후원을 해야지.


성북동에서 조금 떨어진

동선동에 위치한 권진규의 아뜰리에는

주택가 좁은 골목 끝에 위치해있습니다.

이곳까지 어떻게 옮겼을까 싶은

빨간 하프시코드가

마당 한가운데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순이 함께

오래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가끔씩 새가 울며 지나가는

열린 하늘이 보이는 네모난 마당에 앉아서

담백한 음악을 듣고 있자니

뭔가 시간 감각을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가운데

기증으로 문화유산이 보존된 첫 케이스인 이곳은

2006년 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 여사가 기증하여

2008년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좁고 가파른 골목을 지나야

다다를 수 있는 이 집까지

직접 흙을 날랐다는 권진규는

조카와 평소같은 아침 인사를 했던 어느 날

이곳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치 아침에 작업을 하다

잠시 출타한 것 처럼 남겨진 아뜰리에를 바라보자니

이곳이 그의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그 시절을 상상하게 됩니다.


(C) 내셔널 트러스트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구입하여

전시를 하게된 기쁜 일이 있던 시기에

세상을 떠난 천재의 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천재에겐 할당된 시간이 있는 것일까



책 구입 금액이 최순우 옛집 보전기금으로 쓰이는

[성북동, 길에서 예술을 만나다] 는

성북동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삶과 공간을 담고 있습니다.

한성대 입구역에서 나와 성북동길을 따라 걸으면

20세기 이곳 서울에서 살았던 

문화인들의 자취를 밟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지금 가장 발전된 것을 누리는 것 뿐만 아니라

이곳에 살아던 옛 사람들의 삶에

나의 걸음을 얹는 것

아름다운 것을 힘써 지키는 것에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이외에도 

전남 나주의 도래마을을 지키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 관심을 가지신다면

이곳을 방문해주세요.

http://www.nt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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